간결하고 깔끔한 문장에서 방송에서 보았던 그의 꼬장꼬장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어느 누구의 입장도 아닌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이 글은 병자년에 있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둔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로 칼의 노래로 한 번 만났었기 때문인지 이번 글은 칼의 노래만큼 감흥을 주진 못했다. 하지만 김훈의 글은 군더더기 없는 글로 그 시절 왕과 신료들의 마음을 내게 전해준다.
명에게는 군신의 예를 지키면서도 나라가 기울어져 위협에 처해있어도 청에게만큼은 그럴 수 없다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모습_ 내 성격도 이와 비슷한 것을 보면 조상의 피가 많이 섞여있나보다. 아쉬운게 있어도 자존심을 앞세워 실익을 얻지 못하는 나의 모습과 굶주리며 남한산성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면서도 청에게 군사를 거두워 돌아달라고 교지를 보내는 조선조정. 결국 47일만에 산성의 문을 열고 만다.
* 임금은 칸에게 보내는 친서를 하 3사람에게 맡긴다. 그 세 사람은 이것이 훗날 불명예스러운 일이며 집안 대대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임금의 명령이라 거부는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모습(한 사람은 곤장을 맞고 결국 숨을 거두고, 또 한 사람은 심장이 터져 죽게 되고, 마지막은 엉뚱한 내용의 글을 써 올린다)
어명에 따라 글을 지어 올리는 것인데 훗날 나라의 명예에 오점을 남기는 일이라 벌을 받는다니 불합리하고 어불성설의 일일지언데
글의 후반에 나타난 인조의 슬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곳에서 주전파와 주화파의 시간만 보내는 말싸움(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유교적 명분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책 속에서 만나볼 수 있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영의정 김류’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하고 의지도 없는 인물과 국제질서의 이해와 국가적 실리주의자인 ‘이조판서 최명길’, 그리고 유교적 명분으로 충효만을 내세우는 ‘예조판서 김상헌’을 그리고, 우직히 자신의 소임에 충실한 이시백, 무엇하나 자신의 결정이 없는 병조판서, 그리고 서날쇠라는 민초, 청의 통역관으로 잡배일뿐인 정명수등 나름의 등장인물에 현실의 성격을 부여했다.
‘영의정 김류’라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하고 의지도 없는 인물과 국제질서의 이해와 국가적 실리주의자인 ‘이조판서 최명길’, 그리고 유교적 명분으로 충효만을 내세우는 ‘예조판서 김상헌’을 그리고, 우직히 자신의 소임에 충실한 이시백, 무엇하나 자신의 결정이 없는 병조판서, 그리고 서날쇠라는 민초, 청의 통역관으로 잡배일뿐인 정명수등 나름의 등장인물에 현실의 성격을 부여했다.
적군을 대적하는 무관으로서 자신의 소임에 진중한 의미와 그 실행에 힘을 쏟는 ‘이시백’이나, 무능하기 이를데없는 ‘묘당’의 정치권력자들을 비웃어 대는 그러나 자기의 이익을 잃지 않는 이기적 실속파로 묘사되는 민초의 대표격인 ‘서날쇠’는 오늘의 민중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우둔하고 좁은 시야와 탐욕에 그득한 우물안 개구리같은 우리한국사회의 세칭 ‘지도계층’과 그들과 하등 다를바 없는 우리 사회구성원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네이버 북 리뷰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