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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샘터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만난 기분좋은 만남! 바로 이 책을 통해 장영희교수와의 만남이 내게 그렇다.
외부에서 뭐라고 할지는 몰라도 학교에서 일기를 통한 아이들의 만남이 즐거웠었다. 작년까지는... 형식은 맞지않고 맞춤법은 틀린 것도 수두룩하지만 솔직하고 꾸밈없는 그들이 마음이 묻어나는 글을 접하노라면 가식과 허영의 내 모습을 조금은 벗어던지고 아이들과 같은 마음으로 있을 수 있는 것 같아 즐거웠다. 그 어느 곳에서 쉽사리 느낄 수 없는 그 기분을 아이들의 일기를 통해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아이의 마음이 묻어난 글을 접하면 길에서 돈을 주은 것같이 횡재한 기분.. 뭐 그렇다. 하지만 올해는 아이들의 일기에 폭 빠져서 보는 날이 드물었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의 글을 보노라면 몇 줄 억지로 끄적거린 일기가 대부분이고 정말 글을 맛갈나게 쓰던 녀석들도 점차 꾀를 내는 일기쓰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그래서 올해의 이런 아쉬움때문인지 다시 지금 학년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듯 하다.
각설하고 이런 기분을 장영희교수에게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녀의 글에서 가슴 따뜻해지고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문학작품이 생활에서 겪는 에피소드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리게 하는 그녀의 문학에 대한 박학다식에 또한 그녀의 문체에 난 완전 반하고 말았다.
람세스 5권을 뒤로한 채 아무 생각없이 손에 쥔 이 책을 자연스럽게 읽어나가고 그녀의 또 다른 책을 쥠으로써 이 책을 내려놓게 되었다. 이렇게 이 책의 첫 칼럼을 접하면서 난 조용히 장영희 교수의 팬이 되어 버렸다.

#1.
내게 넌 아직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아이에 불과해.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내겐 네가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만일 네가 날 길들인다면, 마치 태양이 떠오르듯 내 세상은 환해질 거야. 나는 다른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네 발자국 소리를 알게 될 거구.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으니까 밀밭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어. 그건 글픈 일이지. 그러나 넌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그러니까 네가 날 길들인다면 밀은 금빛이니까 너를 생각나게 할 거야. 그러면 난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되겠지 만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행복해질 거야.
내 비밀이란 이런 거야. 제대로 보려면 마음으로 봐야 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
= 좋아하는 어린왕자 이야기가 이 책에 인용되었다. 어릴 때는 못 느꼈던 감정을 어른이 되어보니 느끼게 된다.

#2. 내가 별 생각없이 한 말이 젊은 학생들의 마음에 두고두고 남거나 어떤 때는 그들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3. 드넓은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  무덤 하나 파고 나를 눕게 하소서 / 바다에서 고향 찾은 선원처럼, 산에서 고향 찾은 사냥꾼처럼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시로 묘비에 새김)
= ** B씨 아무개 언제 태어나 언제 죽다. 일반적인 우리의 묘비에 새겨지는 글이다. 나는 나중에 죽게 되었을 때 무슨 글을 적어놓을까? 묘비를 쓰지 않더라도 나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지 생각 좀 해봐야겠다.

#4.
우리는 행복을 그토록 원하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간혹 피파처럼 자신이 남에게 준 행복을 깨닫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새삼 생각해보면 행복은 어마어마한 가치나 위대한 성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작은 순간들-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은연중에 내비친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 이 글을 읽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봤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내가 내리던 버스 정류장에서 딸을 기다리던 중년의 대머리 아저씨. 나와 같이 내리던 딸이 깜짝 놀라며 웬일이냐고 물었다. 그 아빠는 딸에게 술 한 잔 얻어 먹으려고 기다렸단다.(우리 아빠의 모습이랑 완전 붕어빵이다) 그랬더니 뭔 술이냐고 핀잔주는 딸(이건 또 내모습이다). 아빠 술 한 잔도 못사주냐고 투덜대던 아빠(어쩜 우리아빠랑 이리도 똑같을까? 집집마다 풍경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 -0-;;) 나와 아빠의 모습과 99%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난 정말 아빠랑 그렇게 대화가 오갈 때는 생각못했다. 그게 행복일 것이라고는... 난 아빠가 술 자주 마시는게 싫고, 나보고 술 사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게 싫었다. 그런데 다른 가족의 모습을 엿보게 되면서 그 모습이 정말 행복해보였다.

#5.
지난번에 신문에 글을 내면서 무심히 로미오와 줄리엣이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었다. 그 글을 읽은 학생 하나가 내게 물어왔다. "선생님 로미오와 줄리엣은 4대 비극 중의 하나가 아니잖아요?" 아차 싶었다. 학생 앞에서 이 무슨 망신인가. 사실 영문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식 문제에도 "다음 중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아닌 것은?"이라는 문제가 단골로 등장하고 답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 얼마 전에 나도 굉장히 부끄러운 실수를 했다. 어서 그런 베짱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수업을 할 때는 지도서도 안보고 교과서 휙 '한 번' 정말 한 번 보고 나혼자 신나서 수업한다. 그런 내가 이번에 KO패를 당했다. 그런데 난 그렇게 당하고도 싸다.
문제는 과학 6. 전기 회로 꾸미기 단원을 가르칠 때였다. 이 단원의 선행학습은 4-2. 전구에 불켜기(전구의 직,병렬)이고 여기서는 기호를 배운 후 전기 회로도를 그려보고 전지의 직, 병렬에 대해 배운다. 그런데 첫차시 기호를 배울 때 난 아무런 의심없이 ㅣ¹에서 짧은 쪽이 (+) 긴 쪽이 (-)라고 가르쳤다. 게다가 전구의 모양을 생각해서 외우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오비이락이라는 말처럼 가르친 후에 보여준 PPT(연수때 받은 자료)를 보여주며 정리를 해주는데 내가 가르친 대로 그 자료에도 나와 있었기에 오류를 몰랐었다.
하지만 외삼촌이 먼 곳을 떠나시게 되면서 우리반 과학수업을 하시게 된 다른 선생님께서 다행히 나의 오류를 찾아내셔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셨다. 부끄럽지만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전지의 (+)(-) 내가 못외우던 것 중 하나였다. 그래서 시험 앞두고 전지 모양의 반대로 외우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시험을 보곤했던 나였는데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에는 '반대'라는 걸 빼고 잘못 가르쳤던 것이다. 덕분에 요즘 지도서 열심히 보고 있다. 나름 아이들에게 뭐든지 물어볼(?) 만만하니까.. 대상으로 되어있는데 한 번의 실수로 신뢰도를 많이 잃었다. 더이상 잃지 말아야겠다.


내생애 단한번, 장영희, 샘터

#1.
가르치는 일은 그들의 영혼을 훔쳐보는 일이고 그래서 나는 그들의 영혼도둑이다. 그들의 젊고 맑은 영혼 속에서 나는 삶의 보람과 내일의 희망을 주는 글거리를 찾는다.

#2.
그러나 요즘 들어 나는 가끔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시큰둥하게 여기거나, 아니면 그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오만해진다면 그 사랑은 참으로 슬프고 낭비적인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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